09. 4. 6.

감성적인, 너무나 감성적인..(분석사례 3)

하이디 베이커의 간증을 읽다가 통곡하다 잠이 들곤 다시 교회 새벽기도 때 안수를 받고 입신했다는 K집사의 간증의 일부는 이렇다.

"갑자기 제가 바위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 벗고 있었습니다.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게 가죽 옷이 입혀졌습니다. 근데 그 손에서 엄청난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제 가슴도 너무나 슬퍼 터져나갈 것 같았습니다. 제 자신이 이브가 된 것 같았습니다. 걸어서 어디론가 내려가면서 너무나 괴로와하고 슬퍼했습니다. 주님이 제 곁에 없는 것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중략)..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슬픔을 잠시 느꼈지만 괴로움과 슬픔의 전이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너는 이브다. 아버지는 다시 이브들을 데려오시려고 하고 계신단다. 나의 신부들이란다...'"

지극히 감성적, 센티멘털한 표현들로 넘친다. 스스로 이브로 느껴졌다는 것도 다분히 은유적/몽환적/시적인 표현들이다. 이브 같다고 해도 거듭난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의 슬픔의 전이를 받아? 항상 기뻐하라시는 주님으로부터? 주님이 곁에 없음이 미칠 듯 해? 거듭난 이래 줄곧 우리 속에 늘 계시는 주님이 "곁에 안 계시다"니? 아무리 이브 같다기로서니 천국에서 이렇다는 것..필자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대목들이다. "너는 이브다"라는 선언 역시 별 의미 없이 이상야릇하며 시적/은유적인 표현이다. 은유는 은유로서의 자리가 있는데 이런 대목에 어울리는 자리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예수님께서 제 손을 잡아주셨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평화가 가슴에 꽉 찹니다. 그리고 저를 해변가로 데려가셨습니다. 3번째 온 것인데 정말 넓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고요하고 따스하고 편안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저는 뛰었습니다. 바닷물을 텀벙거리다가 얼굴을 씻었습니다. 그 물이 떨어지면서 꼭 작은 투명한 보석처럼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모래는 아주 고운 반짝이는 보석처럼 보였습니다. 바닷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웃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달려가서 어린아이처럼 무릎에 고개를 얹었습니다."

소녀적 감상이 어린 장면들이다. 그런데 입신해서 예수님과 함께 해야 평화가 '꽉 차는' 것인가? 평소 거듭난 우리 속에서 늘 함께 하는 샬롬은 어떤가? 여기서도 보석 얘기가 나온다. 물방울도 모래알도 모두 보석 같다는 표현이 그것. 흡사 무슨 영화 장면 같은 해변가 대목에서 필자는 분위기가 비슷한 주남 토머스의 책 내용이 연상됐다.
아닌게 아니라 이 입신간증의 바로 다음 대목이 이렇게 이어진다.

"근데 문득 토마스 주남 여사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여사님도 이곳에 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면서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 '여기서요?' 라고 기뻐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니, 교회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에 올 것이고 우리 교회에 올 것이라고... 그 동안 미국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는데 이젠 나갈 것이고 한국을 제일 먼저 오게 되는데 우리 교회에도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주남 토머스가 위 '예언'대로 이 교회를 방문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 그리고 위에 따르면, K 간증자가 입신했을 당시 주남 토머스도 동시 입신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당시 방문한 그 토머스를 기쁨으로 기대하는 입신자의 맘을 구태여 무시 또는 슬쩍 깔아 뭉개시어(?) 굳이 천국에선 안 만나게 해 주고 한국 방문과 K교회 방문만 언급하셨다는 게 좀 의아스럽다. 주님이 간증자의 맘을 그렇게도 몰라 주신다는 말인가?

토머스의 책을 읽으며 며칠 통곡을 하며 지내곤 미국에 가겠다고 난리를 쳤다는 게 K 간증자의 얘기다. 그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 주신 주님이신가.. 그리고 최근 B 목사가 토머스를 경원시하거나 피차 소원한(?) 관계라는데 이 입신 예언과는 성격이 배치되지 않는가. 그것은 주님이 소원(所願)하시는 소원(疏遠)인가 단지 B 목사 개인의 정책인가.

"예수님께 기뻐서 막 신나 웃고 있는데 예수님이 안아 주셨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엄청나게 커서 전 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거인' 예수님의 언질이 나온다. 왜 주님이 골리앝 같은 거인이셔야 하는지 필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래 전 읽은 헤이긴의 환상 간증에서만도 주님은 헤이긴보다 약간 키가 더 큰 정도였다. 헤이긴의 키가 필자보다 더 크니 주님의 키가 그 정도라도 필자에겐 충분히 많이 크시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골리앝 같은 거인이시라니 황당하다.

"예수님께서 제가 지옥에도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러셔서 못 갈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과연 제가 그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전 처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몇 번 제게 말씀하셨기에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에 충분히 천국을 맛볼 것이라고. 지옥에 영원히 두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을 강제로 보여 주시겠다는 게 '예수님'의 방침이시다. 지옥방문의 분명한 목적의식도 배제돼 있고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없다. 모든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는 천국에서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정도로 애매모호한가..?

"예수님은 제 어깨와 머리를 만지시고는 아기처럼 안아 주셨고 잘 재우시는 것처럼 토닥이셨습니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든 것 같았습니다. 어제부터 심하게 두통과 목이 아팠는데 일어나니 몸이 가벼웠습니다..지옥에 갔다 온 후 처음엔 잘 몰랐는데 몸이 너무 아프고 기운이 없는 것이 지옥 경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계속 회사에서 거의 근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만져 주시고 안아 주시고 토닥여 잘 재워 주셔서 푹 쉬었다는 말과 단지 '지옥'에 갔다 와 몸이 너무 아프고 기운이 없어 근무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은 뭔가 모순된다. 이것은 성경 대언자들이 힘이 빠졌다는 것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토머스의 입신 후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다가 저녁 9시경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집의 창 쪽으로 천사가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워낙 비몽사몽이라 꿈일 수도 있지만... 교회 아닌 저희 집에 천사가 온 것으로 느껴진 건 처음입니다. 천사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얼굴이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제 왼손의 손바닥을 지긋이 누르는데 점점 몸에 생기가 돌았습니다..그러나 아직도 천사가 절 진짜 방문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 신기합니다."

역시 주남 토머스를 연상시킨다. 워낙 비몽사몽이라..방문 여부를 잘 모른다..천사는 택하심 받은 사람 주변에 늘 있다. 그런데 창문을 타 넘고 집에 찾아 온 것으로 느껴지는 그 천사는 혹시 아름답게 가장한 타락한 천사는 아닐까..? 토머스의 '천국' 간증에서도 '주님'이 창문을 타 넘으신다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큰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전 주님께로 갔습니다. 선물박스 같은 것을 주셨습니다. 사방 30cm 정도 되는 박스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빈 박스였습니다. 제가 실망스럽기도 하고 의아해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선물로 주셨다는 빈 박스는 역시 시적/은유적이다. 여기 없지만 그 다음 부분에서 예수님을 빈 박스 안에 "담는다"는 표현..기발나긴 하지만 좀 그렇다. 다소 신성모독적이고 황당하다. 물론 성경엔 우리 마음 그릇에 보배를 담는다는 표현은 있다. 그러나 에제키엘(에스겔)적 은유 기록계시 부여가 끝나고 이젠 모든 것이 확실해야 할 천국 입신 현장에서 새삼스런 이런 은유성 표현은 의아스럽게 한다. 입신기록이라기보다 간증자의 마음의 표현은 아닐까. 거듭난 우리는 누구나 이미 그 영 속에 주님을 모시고 있다. 천국까지 가서 새삼 빈 박스에다 주님을 '담아야' 하는가.

"그곳은 꼭 산의 약수터처럼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위는 너무 아름다웠고 물은 너무 투명하고 깨끗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물을 떠서 마셨습니다. 물은 너무나 상쾌하고 달다는 표현은 그렇지만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건 '지혜의 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많은 깨달음이 올 것이고 네가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주위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이라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생명강수가 있는데도 (전에 가 본 듯한) 산 숲속 약수터 같은 곳에서 흐르는 물을 주님이 마시게 했단다. 역시 의아스럽다. 왜 굳이 산 속 약수터 같은 곳에서..? 애매한 물맛은 둘째 치고 '지혜의 물'? 처음 듣는 얘기다. 지혜의 샘물을 마시면 '깨달음'이 오고 자신과 주변이 이전과 달라진다..? 여전히 은유적/시적/감성적이다. 성경을 읽고 성령의 영감으로 깨달음이 오며, 거듭날 때 이미 우리의 삶이 새 피조물로 바뀌지 않았는가? 자못 관상적이다.

"전 그 말씀을 듣고 다른 무엇보다 무디와 같은 영을 부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께 이름만 들었는데 갑자기 그 분에 대해 알고 싶어 며칠 전 검색을 해 보고 감동을 받고는 그분 생각만 났었습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주님에 대한 단순한 열정적인 믿음이 너무나 닮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나 캐더린 쿨만 여사 같은 분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 분의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너무 욕심이 많고 철없이 여겨졌습니다."

'주님'은 지금 지혜의 샘물을 말씀하시는데 간증자는 무디의 영을 부어 달라고 한다. 무디와 같은 영? 헤이긴과 쿨먼의 영? 영계에서 고인의 '영'들을 자주 만난다는 신사도운동/캔저스시티그룹/플로리다부흥권의 임파테이션이 떠오른다. 이런 말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갈망을 이용해 고인들을 흉내내 나타나는 게 소위 친숙령들(familiar spirits. KJV 참조)이기 때문. 벤틀리가 영계에서 만났다는 순다르 싱, 싱이 만났다는 스베덴보리 등은 모두 실제 고인들이 아닌 친숙령들이다.
어떻게 단정하냐고? 너무도 비성경적인 전후 정황을 살펴 보면, 그런 결론 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B 목사의 입신간증집에는, "검증된" 세계 7대 입신간증의 첫 번째로 싱의 간증이 올라 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제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영만 부어지지 않는다. B 목사에게는 세례 요한, 엘리야, 다윗과 같은 영을 부었다. 이제는 요셉과 같은 영이 부어졌다.’ ‘그에게 물질과 사람을 잘 다룰 수 있는 지혜가 부어질 것이다. 그리고 일곱 형제가 와서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를 높이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곱 형제는 기존의 대형교회를 짊어진 사람으로 제 눈에 환상이 비추어졌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주님은 분명 카톨맄식 세례가 아니라 나아만 장군 식 침례(침수례)를 받으셨다. 받으신 뒤 분명히 요르단 강물에서 올라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침례가 성경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은 기존 한글성경과 전통교회의 전례를 따라 '세례 요한'으로 부르신 모양이다.

지금 입신자가 무디/헤이긴/쿨먼의 영을 바라고 있는 한편 주님이 변목사에게 다양한 고인들 '같은' 영들을 부으셨단다. 그리고는 물질과 사람을 잘 다룰 지혜가 부어질 것이란다. 이 대목에서 벤틀리의 '재정천사'와 '엠마'가 연상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고인들의 영을 논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께도 부어졌던 성령님의 일곱 영들만 중심으로 논하고 있을 뿐이다(이사야 11:2). 이 점에서 매우 비성경적이다.
본 필자는 그 어느 누구 위대한 신앙 선진의 영이라고 해도 싫다. 하나님의 영, 크리스토의 영인 성령님으로 족하다!

대형교회를 짊어진 7형제가 B목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높여? 주님이 아니고? 영광을 다른 신에게 주시지 않는다는 주님께서? 그리고 천국도 대형교회 중심으로 돌아 가나? 이 간증을 보면 왠지 점점 천국이 한심스러워지는(?) 건 나만인가? 이 간증 끝부분은 입신자가 '주님'의 명령대로 지혜의 샘물을 한 바가지 퍼다가 목사에게 퍼 붓는 대목이다. 역시 은유적/시적인 표현이다. 뭐라 해야 할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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